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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역사 ①: 난투극에서 포메이션까지

2026. 6. 24.

축구의 역사 ①: 난투극에서 포메이션까지

축구는 들판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것 같지만 사실 회의실에서 태어났습니다. 1863년 12월 런던, 한자리에 모인 클럽 대표들이 규칙을 한 줄씩 합의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아는 축구가 시작됐죠. 그전까지 축구는 마을과 마을이 수백 명씩 엉겨 공을 빼앗던 난투극에 가까웠습니다. 오늘은 그 거친 놀이가 어떻게 규칙과 포메이션을 갖춘 경기로 다듬어졌는지, 첫 70년을 따라가 봅니다.

19세기 후반의 풋볼 팀을 그린 분위기 이미지

19세기 후반의 풋볼 팀 사진. 두꺼운 모직 상의가 당시의 유니폼이었습니다. (이미지: AI 생성)

이 글에서 짚을 70년의 큰 매듭만 먼저 펼쳐 두겠습니다.

  1. 1863
    FA 창립과 첫 규칙

    런던에서 통일 규칙 제정. 손을 쓰는 럭비와 갈라섭니다.

  2. 1866
    오프사이드 완화(3인 규칙)

    전진 패스가 비로소 합법이 됩니다.

  3. 1872
    세계 첫 국가대항전

    스코틀랜드의 패스 축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0-0).

  4. 1885
    프로 합법화

    축구가 취미에서 직업으로 바뀝니다.

  5. 1888
    풋볼리그 출범

    정기 리그로 흥행 구조가 완성됩니다.

  6. 1925
    오프사이드 2인 규칙

    WM 포메이션을 부른 결정적 변화입니다.

영국이 ‘발명’한 건 아니다: 공놀이는 어디에나 있었다

흔히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절반만 맞는 말인데요. 공을 차고 다투는 놀이는 영국만의 것도, 근대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FIFA가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축구의 조상’으로 인정하는 건 중국의 추주(蹴鞠)입니다. 기원전 300년 무렵, 한나라 군사 교본에 규칙이 적혀 있을 만큼 오래됐죠. 손을 쓰지 않고 가죽 공을 그물 사이로 차 넣는 놀이였습니다(2004년 FIFA는 산둥성 쯔보를 ‘축구의 발상지’로 선언하기도 했고요). 일본의 케마리, 고대 그리스·로마의 공놀이도 있었습니다.

난투극에 가까운 중세의 ‘민속 축구(folk football)‘도 영국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의 라 술(la soule)은 12세기부터 마을 수백 명이 며칠씩 공 하나를 두고 겨뤘고 이탈리아 피렌체의 칼초 피오렌티노는 15세기에 이미 27명씩 팀을 짜 1580년엔 규칙을 문서로 남겼습니다. 아일랜드(카이드)·웨일스(크나판)·북유럽에도 저마다의 변형이 있었죠.

그렇다면 왜 근대 축구의 출발점을 영국으로 볼까요? 영국이 한 일은 공놀이의 ‘발명’이 아니라 ‘코드화(codification)‘였기 때문입니다. 제각각이던 수많은 변형 가운데, 누구나 똑같은 규칙으로 즐기고 또 어디로든 퍼뜨릴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경기로 정리한 것. 그 분기점이 1863년이었습니다.

난투극을 규칙으로: 1863년, 축구와 럭비가 갈라서다

19세기 중반까지 잉글랜드의 ‘풋볼’은 학교와 마을마다 규칙이 제각각이었습니다. 공을 손에 들고 달려도 됐고 공을 든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해킹(hacking)‘도 흔했죠. 규칙이 다르니 다른 학교끼리는 시합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1863년 풋볼 어소시에이션(FA)이 처음 통일 규칙을 만들면서 두 가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손으로 공을 들 수 있는가, 그리고 상대를 걷어차도 되는가. FA는 둘 다 금지하기로 했고 이에 반발한 클럽들이 떨어져 나가 훗날 럭비가 됩니다. 즉 1863년 12월은 축구의 생일인 동시에, 축구와 럭비가 갈라선 날이기도 합니다.

오프사이드가 만든 ‘뻥축구’

흔히 옛날 축구를 두고 “오프사이드가 없어서 마구 차 넣던 시절”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앞으로 패스를 줄 수 없으니 남은 방법은 혼자 공을 몰고 들어가는 드리블뿐이었습니다. 자연히 공격수를 잔뜩 세운 형태가 표준이 됐고요. 이 답답함을 처음 푼 것이 1866년 ‘3인 규칙’입니다. 패스를 받는 선수와 골라인 사이에 수비수가 셋만 있으면 온사이드로 인정해 비로소 전진 패스의 길이 열렸죠. 규칙 한 줄이 경기의 스타일을 통째로 바꾼 셈입니다.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패스

전진 패스가 허용되자, 그 틈을 가장 먼저 파고든 건 잉글랜드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였습니다. 1867년 창단한 퀸스파크 선수들은 잉글랜드 선수들보다 체격이 작았는데요. 정면 드리블 대결로는 승산이 없자 짧은 패스로 공을 주고받으며 경기를 풀어가는 ‘조합 플레이(combination game)‘를 고안합니다.

1872년 세계 첫 공식 국가대항전(스코틀랜드 0-0 잉글랜드)에서 이 패스 축구가 모습을 드러냈고 1878년부터 82년 사이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를 7-2, 6-1, 5-1로 잇따라 대파했습니다. 일부 매체가 1872년의 글래스고를 두고 “티키타카의 고향”이라 부르는 이유죠. 작은 체구라는 약점이 오히려 패스라는 혁신을 낳은 셈이죠.

세피아 톤으로 그린 옛 가죽 축구공

가죽을 꿰매 만든 초기의 공. 지금과는 무게도, 굴러가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이미지: AI 생성)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경기들

초기 축구라고 기록이 부실했던 건 아닙니다. 세계 최초의 국가대항전부터 날짜·장소·관중·라인업까지 꽤 상세히 남아 있죠.

1872년 첫 국가대항전을 다룬 윌리엄 랠스턴의 판화 'Dribbling'

1872년 첫 국가대항전 무렵의 풋볼을 그린 윌리엄 랠스턴의 판화(‘Dribbling’, The Graphic 게재). 패스보다 개인 드리블이 주를 이루던 시절을 보여줍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기록이 생생하기로는 같은 해 열린 첫 FA컵 결승(1872년 3월, 원더러스 1-0 로열 엔지니어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결승골을 넣은 모턴 베츠는 ‘A. H. Chequer’라는 가명으로 출전했고 로열 엔지니어스의 크레스웰은 전반 10분 쇄골이 부러졌는데도 교체가 없던 시절이라 남은 시간을 측면에서 ‘승객’처럼 버텼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로열 엔지니어스가 선보인 ‘조합 플레이(패스)‘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혁신으로 평가받았죠.

돈이 들어오다

패스를 익힌 스코틀랜드 선수들은 곧 잉글랜드 북부 산업도시 클럽들의 ‘영입 대상’이 됩니다. 관중이 많은 북부 구단들이 좋은 선수에게 몰래 돈을 쥐여 주기 시작했고 이 은밀한 관행을 양성화한 것이 1885년의 프로 합법화입니다. 축구가 신사의 취미에서 직업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었죠.

프로가 생기니 정기적인 수입, 곧 정기적인 경기가 필요해졌습니다. 그 결과가 1888년 풋볼리그 출범입니다. 임금이 치솟자 구단들은 비용을 묶으려 주급 상한선을 둡니다.

이 상한제는 이후 60년간 잉글랜드 축구의 임금 체계를 좌우하게 됩니다. 규칙과 전술뿐 아니라, 축구를 둘러싼 돈의 틀도 이 무렵에 짜인 셈이죠.

포메이션의 진화: 1-2-7에서 WM까지

지금까지 짚은 변화는 결국 포메이션 한 장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포메이션은 멋으로 정한 게 아니라, 규칙과 경기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 내놓은 해답이었거든요.

1-2-71860~70년대
전진 패스가 막혀 공격수만 잔뜩. 혼자 몰고 가는 '돌파 축구'의 시대.
2-3-5 ‘피라미드’1880~1930년대
센터하프
처음으로 공수 균형. 가운데 센터하프가 공격 조율과 수비를 겸한 사령탑이었습니다.
WM (3-2-2-3)1930~50년대
센터하프를 수비로 내려 3백을 만든 채프먼의 해법.

전진 패스가 불법이던 시절의 1-2-7은 사실상 다 같이 몰려가는 형태였습니다. 패스가 보급되면서 등장한 2-3-5 ‘피라미드’는 처음으로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잡았고 1890년대 전 세계 표준이 됐죠. 핵심은 가운데 센터하프였습니다. 팀의 공격을 조율하면서 상대 중앙 공격수까지 막는, 당대 최고의 만능 보직이었거든요.

그런데 1925년, 오프사이드 규칙이 또 한 번 바뀝니다. 온사이드 기준이 수비수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거죠. 효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골이 쏟아지자 수비가 급해졌습니다. 아스널의 명장 허버트 채프먼은 2-3-5의 센터하프를 아예 수비 라인으로 끌어내려 상대 공격수를 전담 마크하게 했죠. 이렇게 3백이 만들어지며 탄생한 것이 WM(3-2-2-3)입니다. WM은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세계를 지배하며 피라미드의 시대를 끝냅니다.

다음 편에서

규칙 한 줄이 스타일을 바꾸고, 스타일이 포메이션을 낳고, 그 위에 돈이 흐르기 시작한 첫 70년을 짚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WM을 무너뜨린 1950년대의 충격(헝가리의 ‘매직 마자르’와 브라질의 4-2-4)부터, 토탈 풋볼과 현대 전술까지 이어가겠습니다.

더 깊이 보고 싶다면 전술 역사의 정전으로 꼽히는 조너선 윌슨의 『Inverting the Pyramid』를 추천합니다. 제목부터 이 글의 ‘피라미드(2-3-5)‘를 뒤집는다는 뜻이죠.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무료로 대여해 읽을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