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났습니다.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 모인 80,663명 앞에서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를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요.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6년 만의 두 번째 별입니다. 유로 2024 우승에 이어 메이저 대회 2연속 제패이기도 하고요. 결승골의 주인공은 선발도 아니었던 페란 토레스, 시간은 연장 후반이 막 시작된 106분이었습니다.

슈팅 20-2, 그러나 열리지 않던 문
경기 내용은 스코어보다 훨씬 일방적이었습니다. 스페인이 슈팅 20개를 때리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정규시간 90분 동안 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거든요. 대회 내내 스페인을 지탱한 로드리 중심의 4-1-2-3는 결승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로드리가 후방에서 템포를 쥐고, 바에나와 파비안이 중원을 채우고, 야말과 오야르사발이 측면에서 계속 균열을 만드는 익숙한 그림이었죠.
문제는 마지막 문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골문 앞에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가 서 있었거든요. 이날 마르티네스는 세이브 11개를 기록했습니다. 월드컵 결승전 역사상 최다 세이브인데요. 슈팅 20개 중 절반 이상이 골문 안으로 향했다는 뜻이니(세이브 11개에 실점 1), 스페인의 공격이 외곽에서 겉돈 게 아니라 마르티네스가 들어갈 공을 계속 꺼낸 경기였습니다. 44분 리산드로 마르티네스가 경고를 받은 지 3분 만에 오타멘디로 교체되는 등 수비진이 일찍부터 삐걱댔는데도 0-0이 유지된 건 온전히 골키퍼의 손끝 덕분이었습니다.
90+3분, 승부를 기울인 퇴장
아르헨티나의 계획은 명확했습니다. 4-4-2로 내려앉아 메시와 알바레스의 한 방을 기다리는 것. 슈팅 0개라는 숫자가 보여주듯 그 한 방은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버티기 자체는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규시간 추가시간에 경기의 결이 바뀌었습니다. 82분 경고를 받았던 엔소 페르난데스가 90+3분 두 번째 경고로 퇴장당한 겁니다.
10명으로 연장 30분을 버텨야 하는 상황. 아르헨티나 벤치는 102분 알바레스를 빼고 수비수 세네시를 넣으며 완전히 걸어 잠갔습니다. 승부차기까지 가겠다는 선언이었죠. 메시 혼자 최전방에 남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스페인의 파상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벤치에서 나온 마지막 답
결승골은 교체 카드 두 장이 합작했습니다. 106분, 오른쪽에서 포로가 올린 크로스를 니코 윌리엄스(75분 투입)가 헤더로 살려냈고, 흘러나온 공을 페란 토레스(62분 투입)가 문전에서 밀어 넣었습니다. 105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을 벤치에서 나온 두 선수가 함께 연 겁니다. 라푸엔테 감독이 준비한 수가 순서대로 맞아떨어진 골이었죠.
남은 시간 아르헨티나는 반격할 힘이 없었습니다. 10명인 데다 공격 자원도 이미 다 빠진 뒤였으니까요. 120분이 지나고 주심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 스페인 벤치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선발 라인업과 교체
실제 선발 위치와 교체 시점을 함께 담았습니다. 선수 옆 ↓는 빠진 시간, 왼쪽 아래 ‘교체 IN’은 들어온 시간입니다.


스페인은 대회 내내 유지한 4-1-2-3 그대로였고, 유일한 변화는 페드리 대신 파비안의 선발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건 99분의 교체입니다. 아직 0-0이던 시점에 로드리와 라포르트를 빼는 강수를 뒀는데요. 골든볼급 활약을 하던 주장을 빼고 연장 후반과 승부차기까지 내다본 결정이었고, 7분 뒤 골이 터지면서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그림이 됐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메시와 알바레스를 투톱으로 세운 4-4-2였습니다. 다만 교체 여섯 장 가운데 공격 성향 카드는 70분에 들어온 시메오네 한 장뿐이었고 나머지는 수비 자원 위주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버티는 경기를 설계했고, 그 설계는 퇴장 전까지는 작동했습니다.
로드리의 대회, 메시의 마지막
대회 시상도 스페인이 휩쓸었습니다. 골든볼(대회 최우수 선수)은 주장 로드리에게 돌아갔고, 영플레이어상은 19세 센터백 쿠바르시가 받았습니다. 스페인은 8경기에서 단 1실점으로 우승했는데요. 역대 월드컵 우승팀 가운데 최소 실점 기록입니다. 화려한 티키타카의 시대와는 결이 다른, 통제와 질식으로 쌓아 올린 우승이라는 점이 이 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메시의 이름을 적지 않을 수 없습니다. 39세에 결승까지 팀을 끌고 와 대회 8골로 실버볼을 받았지만, 정작 결승에서는 철저히 고립됐습니다. 팀 전체가 정규시간에 슈팅 하나를 기록하지 못했으니 최전방의 메시에게 공급될 공 자체가 없었던 거죠.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컵을 드는 데는 그렇게 실패했습니다. 골든부트는 10골의 음바페에게 돌아갔고요. 이번 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일 메시에게, 뉴저지의 밤은 잔인한 결말이었습니다.
자료: FIFA 공식 데이터(스코어·득점·선발·교체·슈팅·이벤트 타임라인 일체). 세이브 기록·시상 등은 ESPN·알자지라·올림픽 공식 채널 리포트를 교차 참조했습니다. xG는 제공되지 않아 흐름 판단은 골 타이밍과 슈팅 지표 위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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